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에서 나고 자라도 아직 안동을 모른다. 어린 시절 나는 옥정동에서 태어났고 학교를 들어갈 무렵 이사했다. 언니는 당시 국민학교라고 불리던 동부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규모가 제법 컸던 발레반이 있었다. 언니는 발레복을 입은 사진을 보며 화려한 옥정동을 회상하곤 했다.

나는 여러 채 한옥과 새로 지은 양옥이 즐비했던 옥정동을 떠난 이후, 우리가 살았던 곳을 찾지 않았고 간혹 생각이 나더라도 어디쯤인지 기억해내지 못했다. 안동구치소 자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군청이 옮겨간 탓도 있지만 전성기가 지나 급격하게 쇠락하기 시작한 옥정동은 시간이 지나며 찬란했던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안동 중심상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어느덧 켜켜이 먼지가 쌓인 한적한 동네로 잊혀져 가고 있었다.

몇 해 전부터 옥정동 일대를 중심으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옥정동을 포함한 중구동 일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고려의 길로 명명된 태사로가 정비되자 낡고 방치된 한옥들이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아트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릴 적 살았던 동네에 가볼까?”

추석을 며칠 앞둔 날에 언니는 새로 개통된 KTX를 타고 안동으로 내려왔다. 안동의 도시재생 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중구동은 길목이 정비되고 벽화가 그려졌지만 어렴풋하게 옛날의 기억을 더듬어 동네를 걸었다.

“여긴 뭐랄까. 음, 사람 사는 냄새가 나네.”

어릴적 살았던 집은 허물어지고 새로 지은 집들이 들어섰지만 언니는 어디쯤인지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앞서 걸었다. 변한 것들 사이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한옥이 주는 편안함과 엄마 품속 같은 아늑함이다.

길을 걷다 보면 연탄불에 밥 타는 냄새가 날 것 같고 해지는 줄 모르고 골목을 누비며 놀고 있는 개구쟁이를 만날 것 같다. 대문을 활짝 열고 누구야 밥 먹자는 목청 큰 아낙의 걸걸한 목소리가 떠올라 저절로 웃음이 나고 담장 넘어 늙은 부부가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도 들려오는 듯 하다.

중구동 한옥마을은 우리와 함께 자연스럽게 늙어서 그런지 저절로 편안함을 주고 있었다.

우리는 어느덧 중구동 한옥마을 안에 들어와 정겨운 풍경에 빠져들고 있었다. 초입에 그려진 거리벽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초원사진관과 사진공방 소조의 매력도 한옥과 잘 어울렸다.

“소조가 초상을 높여 부르는 말이야. 알고 있었어?”

언니의 물음에 몰랐다고 대답하자 사진관 한쪽에 써 있는 말이라고 혼자 깔깔 웃었다.

우리는 70년대 감성으로 돌아가 흑백 셀프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에는 세월의 흔적이 흑백으로 가려진 두 소녀가 있었다. 레트로 감성이 물씬 풍기는 사진을 보고 있으니 은근 세월이 우리만 비껴간 듯 잔잔한 위로가 되는 듯 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초원 사진관 앞에서 사진 한 장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중구동 한옥마을을 배경으로 가을하늘은 티없이 맑았다. 작은 텃밭에는 초록 빛깔의 배추가 익어가고 담장 밑에는 코스모스가 한들거렸다.

우리는 골목 안에 들어선 한옥카페 투어를 시작했다. 한옥이 주는 여유로움과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홍차전문 카페, 하늘과 푸른 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햇살의 포근함 속에서 한잔의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커피전문 카페, 해질 무렵 옥상에서 한옥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반려동물과 함께 할 수 있는 카페에서 색다른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었다.

밤에는 한옥의 아름다움에 반해 문을 연 한옥펍도 만날 수 있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의 서양식 펍이 한옥과 만나면 어떤 느낌일까? 기대를 잔뜩 안고 한옥펍으로 향했다. 수제맥주 한잔과 별빛 가득한 밤에 만나는 한옥의 고즈넉함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루를 온전히 중구동 한옥마을에서 보낸 우리는 맥주 한잔을 앞에 놓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언니, 어릴적 신었던 발레슈즈 아직도 갖고 있어?”

“그건 내 자존심이야. 절대 못버려.”

우리가 살았던 고향마을은 이제 과거를 공유하고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옛 것에 얽매여 한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니가 이젠 발에 맞지도 않는 발레슈즈를 안고 살아가는 것보다 중년의 나이에 새로 발레를 시작하여 발에 맞는 새로운 발레 슈즈를 사면 어떻게 될까.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슬프고 초라하고 원하는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선뜻 주어지지 않는 특별함으로 채워가는 것이라는 걸 중구동 한옥마을에서 느낀 하루였다.

우리 모두는 특별했고 중구동 한옥마을은 과거 삶의 애환이 느껴지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레트로를 넘어 뉴트로를 향해 순항 중이었다.

안동, 이곳이굿이다.

글. 신현랑(수필가) 사진. 이대율(안동인터넷뉴스)

안동 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 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 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 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 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동부초등학교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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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한옥카페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한옥카페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초원사진관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초원사진관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찻집ⓒ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찻집ⓒ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안동중구동 한옥마을을 가다. ⓒ안동인터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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